다리는 왜 아치 모양으로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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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가르 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지은 수도교 ‘폰 뒤 가르(Pont du Gard)’는 기원후 1~2세기경(최신 발굴에 따르면 40~60 AD경)에 준공되었습니다. 약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형태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도, 철근도 없던 시대에 돌만으로 만든 구조물이 어떻게 2000년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모양 그 자체에 있습니다. 아치는 곡선 형태의 구조로, 무게를 양쪽 지점으로 흩어지게 설계되었습니다. 직선 보는 중앙에 무게가 집중되지만, 아치는 그 무게를 축방향 압축력으로 바꿔 양쪽으로 분산시킵니다. 이 차이가 아치를 수천 년을 버티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곡선이 무게를 나누는 방법

손가락으로 따뜻한 빵을 눌러보면 손가락이 빵 안으로 파고듭니다. 하지만 손가락 두 개를 동시에 빵의 양쪽에서 누르면 어떻게 될까요? 빵이 더 잘 견딥니다. 아치의 원리가 정확히 이것입니다.

직선 보 구조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무게가 중앙 한 지점에 집중되어 큰 휨모멘트(bending moment)를 만듭니다. 보가 이를 견디려면 두꺼워야 합니다. 반면 아치 구조에서는 무게가 곡선을 따라 흐르면서 양쪽 지점으로 분산됩니다. 각 지점이 받는 하중은 작아집니다. 같은 강도의 돌이나 벽돌로도 훨씬 큰 스팬(거리)을 견딜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치 구조의 힘 전달 원리 무게 큰 휨모멘트 (중앙에 집중) 직선 보: 무게가 중앙에 집중 두꺼운 재료 필요 무게 압축력 압축력 아치: 무게가 양쪽으로 분산 얇은 재료로도 강함

이를 압축력이라고 부릅니다. 아치 속 돌들이 서로 눌러 붙는 힘입니다. 아치 구조에서 무게는 양쪽 교각으로 전달되며, 각 돌은 압축력으로 옆 돌을 누르고 있습니다. 이 압축력 덕분에 아치 구조는 중앙이 무너지지 않고 무게를 견딜 수 있습니다.

역사 속의 아치 구조

로마 제국은 아치 구조의 활용을 보여준다. 폰 뒤 가르는 세 층의 아치로 이루어진 거대한 수도교다. 세 단의 아케이드 중 물을 나르는 수로(canal)는 맨 위층에 있고, 가장 아래층은 중세 이후 도로로도 쓰였다. 이렇게 높이 솟은 돌다리를 철근 없이 오직 압축력만으로 2000년간 유지한 것이다.

한반도에서도 아치 구조가 사용되었다. 창경궁에 있는 옥천교는 1483년 무렵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돌다리로, 두 개의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석을 정교하게 쌓아올려 만든 이 다리는 오늘날까지 제 기능을 하고 있다.

현대 다리는 왜 아치만 쓰지 않을까

그렇다면 현대의 모든 다리가 아치 구조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현대의 다리는 다양한 구조를 혼합합니다.

현수교는 강의 양쪽 끝에 큰 탑을 세우고, 거기서 굵은 케이블을 내려 다리를 매단다. 이 구조는 매우 긴 경간을 실현한다.

사장교는 중앙의 탑에서 대각선 케이블로 다리를 지탱하며, 현대의 많은 큰 다리가 이 형식을 채택한다.

아치 구조는 언제 사용할까요? 비교적 중간 규모의 경간, 특히 미관이 중요한 곳입니다. 서울의 서강대교가 좋은 예입니다. 1996년 12월 30일 개통된 이 다리는 국내 최초의 ‘닐센계 아치교’입니다. 경간이 150미터인 거대한 아치 구간이 한강을 가로질러 있습니다. 초기 설계안은 사장교였지만, 한강의 경관을 고려해 재설계 과정에서 아치교로 변경했습니다. 현대에도 아치는 강도와 미관을 동시에 충족하는 선택지입니다.

한강 위의 아치를 찾아보기

서강대교를 한강 위에서 직접 본다면 어떤 점을 관찰할 수 있을까요?

먼저 다리의 아래쪽을 주목하세요. 거대한 곡선이 강물 위로 솟아 있습니다. 이 곡선이 2000년 전 로마의 폰 뒤 가르와 같은 원리로 무게를 견디고 있습니다. 다리 양쪽 끝의 교각을 보면, 아치가 얼마나 강한 힘으로 그곳을 누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교각들이 아치의 압축력을 받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리 위에서 봤을 때는 보이지 않는 무게들이, 아래에서 보면 명확한 곡선으로 표현됩니다. 다리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법칙을 보는 경험입니다. 그 무게를 흩어지게 하는 곡선의 지혜가 세월을 버티는 구조의 비결입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