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신축 아파트 분양 공고를 열어보면 “단지 배치도” 항목이 있다. 회색 직사각형으로 표현된 건물들이 일렬이거나 ‘V’자로 배치되어 있고, 건물 사이 거리는 일관된 패턴을 따르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다르면 그에 맞춰 동 간 거리도 달라진다. 왜 이렇게 계산되는가.
출발점은 겨울 햇빛이다. 겨울 해는 낮게 떠서 앞 건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건축법은 이 문제를 두 갈래로 다룬다. 기본 규칙은 마주보는 두 동 사이를 건물 높이에 비례해 띄우는 것이고, 동지 기준의 일조 시간을 확보하는 방식은 그 대안으로 조문의 단서에 들어 있다.
겨울 태양 높이가 기준이 되는 이유
여름과 겨울 태양의 높이는 매우 다르다. 서울에서 겨울 동지 정오의 태양은 지평선에서 약 29도에 불과하지만, 여름 하지 정오에는 약 76도까지 올라온다. 건축물 사이의 거리를 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낮은 태양, 즉 겨울 햇빛이다.
왜 겨울을 기준으로 할까. 여름에는 어차피 햇빛이 높게 들어오니까 앞 건물이 방해하지 않는다. 건물 사이 어느 정도 공간이 있으면 여름 햇빛은 자동으로 확보된다. 반면 겨울에는 태양이 낮아서 앞 건물의 그림자가 뒤 건물까지 길게 뻗어 올 수 있다. 모든 세대가 겨울에도 햇빛을 받도록 설계하면 여름은 자동으로 충족된다. 건축법에서 “동지 기준 9시부터 15시 사이에 2시간 이상”이라고 명시한 것도 이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한옥 처마가 여름 태양은 가리고 겨울 태양은 들이는 길이로 설계된 것과 같은 논리다.
법의 구조는 이렇다. 건축법 제61조는 공동주택의 일조 확보를 위한 높이 제한을 두고, 시행령 제86조 제3항 제2호는 같은 대지에서 두 동이 마주보는 경우 채광창이 있는 벽면에서 직각방향으로 건축물 높이의 0.5배(도시형 생활주택은 0.25배) 이상의 범위에서 건축조례가 정하는 거리 이상을 띄우도록 한다. 그리고 같은 조문의 단서는, 그 대신 “모든 세대가 동지를 기준으로 9시에서 15시 사이에 2시간 이상을 계속하여 일조를 확보할 수 있는 거리”를 택할 수 있게 한다. 2시간 일조는 기본 의무가 아니라 대안 방식인 것이다.
높이의 0.5배에서 시작하는 법적 기준
인동거리(건물 사이 거리)의 출발점은 건물 높이다. 채광창이 있는 벽면으로부터 직각방향으로 건축물 높이의 0.5배(도시형 생활주택은 0.25배) 이상의 범위에서, 각 지자체의 건축조례가 실제 거리를 정한다. 예를 들어 높이 30미터인 아파트가 같은 높이의 건물과 마주본다면 그 0.5배인 15미터가 조례가 거리를 정하는 기준 범위가 된다. 높이 50미터(약 15층)라면 25미터, 60미터(약 18층)라면 30미터가 그 기준이다.
왜 하필 0.5배인지의 입법 근거는 조문에 적혀 있지 않다. 참고로 동지 정오의 태양 고도(서울 약 29도)로 그림자를 기하학적으로 계산하면 건물 높이의 1.8배 가까운 거리가 필요하다. 즉 0.5배는 완전한 일조를 보장하는 수치가 아니라, 밀도와 주거환경 사이에서 제도가 택한 선이며, 조례로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있게 열어 둔 구조다.
도시형 생활주택에는 0.25배의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또한 대지 모양이나 주변 건물 때문에 기준을 조정받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중·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0.5배 기준을 따른다.
판상형과 타워형, 배치로 드러나는 차이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크게 두 가지 배치 방식으로 나뉜다. 판상형은 건물들을 일렬로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이다. 모든 세대를 남쪽을 향하게 놓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거실과 주방 창이 서로 마주봐 환기가 좋고, 모두 남향이니 채광과 난방이 우수하다. 반면 앞 동이 뒷동을 가리는 문제가 심하다. 뒷동의 세대들은 앞 동의 벽만 보일 수 있다. 뒷동이 동지 기준 2시간 이상의 일조를 확보하려면, 앞동과의 거리가 꽤 멀어야 한다.
타워형은 다르다. 중앙의 엘리베이터 타워를 중심으로 세대들이 Y자나 ㅁ자 형태로 퍼져 나간다. 각 세대가 여러 방향으로 개방되므로 조망도 다양하고, 세대 간 배치가 엇갈려 있어서 옆 집이 내 창을 직접 보기 어렵다. 일조도 더 공평하게 분배된다. 대신 공용 복도가 길어지고 공용 면적이 증가하는 단점이 있다.
이 차이 때문에 배치 방식을 선택할 때 동 간 거리 기준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 판상형을 고집하면서 법정 일조 기준을 지키려면 넓은 동간거리가 필수인데, 이는 곧 대지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뜻이다. 용적률(땅에 지을 수 있는 건물 면적)이 제한되어 있다면, 판상형은 세대수가 줄어든다. 부동산 개발사 입장에서 이는 수익성 저하를 의미한다. 따라서 토지가 비싼 강남이나 도심일수록 판상형보다 타워형이 증가하는 이유다.
요즘 단지는 혼합형이 대세
최근의 신축 아파트 단지를 보면 판상형과 타워형을 섞어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동 간 거리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두 방식의 장점을 모으려는 시도다. V자나 U자 형태로 단지를 배치한 후, 꺾이는 부분에 타워형을 세우고 일직선 구간에 판상형을 놓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판상형은 남향 채광의 이점을 살리고, 타워형은 조망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일부 지자체에서 인동거리 기준을 완화하는 추세도 나타났다. 주택 공급 부족을 이유로 동 간 거리를 좁혀도 되는 조례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시행령이 정한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시행령의 0.5배(도시형 0.25배) 범위 안에서 조례가 정하는 거리를 조정하는 방식이므로, 완화의 폭도 그 틀 안에서 움직인다.
다음에 단지를 보면
아파트 단지를 방문할 때 배치도를 한번 자세히 보라. 건물들 사이의 거리가 일관된 패턴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높은 건물일수록 이웃 건물과의 거리가 더 벌어져 있다면, 그것은 계산된 설계다. 실제 동 간 거리는 시행령과 해당 지역의 건축조례, 건물의 높이와 배치 조건을 함께 적용해 정해진다.
참고 자료
- 건축법 제61조(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 제한), 건축법 시행령 제86조 (law.go.kr)
- 대법원 판례 및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산지방법원 일조권 침해 사건 판결
- 국가유산청, 한옥 채광 설계 원리 (cha.go.kr)
-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설계 기준
검토 기준일: 2026-08-21. 인동거리 기본 규칙(높이의 0.5배·도시형 0.25배 범위에서 조례로 결정)과 동지 2시간 일조 확보의 단서 방식은 건축법 시행령 제86조 제3항 제2호 원문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