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30층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보다 높은 층에 있는 회사로 미팅을 가면 귀가 먹먹하고 살짝 어지럽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높은 건물이 어떻게 서 있는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높이 555미터, 지상 123층. 서울 송파구에 우뚝 솟은 롯데월드타워는 초고층 건물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입니다. 이만한 높이의 건물은 강한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는데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초고층이 더 위험하다. 왜 그럴까?
초고층 설계의 목표는 흔들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줄이는 것이다. 방법은 크게 둘이다. 하나는 건물 자체의 뼈대를 바람에 버티도록 짜는 것, 다른 하나는 흔들림이 시작된 뒤 그것을 상쇄하는 장치를 넣는 것이다. 후자의 대표가 건물 안에 매달린 거대한 추, 동조질량댐퍼(TMD)다.
초고층 빌딩의 흔들림 제어 비결을 이해하려면 먼저 왜 높은 건물일수록 더 흔들리는지 알아야 합니다.
왜 높은 건물일수록 더 흔들릴까
지상에서 한 블록을 걸어가는 것과 100층 높이에서 똑같은 강도의 바람을 맞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의 속도와 강도가 급격히 증가합니다. 이를 풍하중(wind load)이라고 부르는데, 건축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초고층 빌딩이 문제로 마주하는 것은 그냥 “강한 바람”이 아닙니다. 바람이 일정하게 불면 오히려 건물도 그 방향으로 안정적으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더 위험한 것은 바람이 들쑥날쑥 변할 때 생기는 진동입니다. 특히 건물이 고유진동수(natural frequency)라 불리는 자신만의 진동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마치 그네가 한 번 밀면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리듯이, 건물도 외부 힘이 없어도 자기 주기대로 진동합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풍하중의 변동이 건물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할 때입니다. 이를 공진(resonance) 현상이라 부르는데, 이때는 진동이 증폭되어 매우 위험해집니다. 초기에는 1940년 미국의 타코마 현수교 붕괴가 공진으로 알려졌으나, 현대 공학 연구에 따르면 실제 원인은 에어로일래스틱 플러터(바람에 의해 유도된 자체 증폭 진동)였습니다. 바람에 의해 구조물이 한쪽으로 들렸다 반대쪽으로 내려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구조에 피로가 축적되어 붕괴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따라서 초고층 빌딩의 설계자들은 건물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바람의 변동과 공진 현상 모두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진동 자체를 제어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건물 속 거대한 추, TMD의 원리
동조질량댐퍼(TMD)는 초고층 건물의 진동 제어를 위한 핵심 기술 중 하나입니다. 타이베이101(대만)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실제로 이 장치를 볼 수 있습니다. 87층과 92층 사이에 매달려 있는 660톤 규모의 거대한 강철 구와 그것을 지탱하는 8개의 거대한 로프 말입니다.
TMD가 작동하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건물이 한쪽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운동을 감지한 TMD의 거대한 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마치 건물의 흔들림에 맞춰 반대로 춤을 추듯이 말입니다. 이 반대 운동이 건물의 진동을 상쇄하면서 전체 흔들림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타이베이101의 TMD는 건물 진동을 최대 40%까지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TMD의 질량과 설계 주기가 정확하게 건물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건물마다 크기와 무게, 재료가 다르므로 고유진동수도 다릅니다. 따라서 각 건물의 TMD는 맞춤형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이는 매우 정교한 계산과 함께 수행되는 작업입니다.
현실의 다양한 해결책들
TMD가 모든 초고층 건물의 표준은 아닙니다. 건물의 용도, 높이, 건축 위치에 따라 다양한 제진 방식이 적용됩니다. 한국의 또 다른 초고층 아파트인 더샵 퍼스트월드는 다른 접근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건물은 U자형의 거대한 물탱크에 650톤의 액체를 담아 진동을 제어합니다. 물이 건물과 함께 흔들리면서 그 출렁임으로 진동을 흡수하는 원리인데, 이 방식의 장점은 물을 평상시 소방용수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건축 구조 전문가들은 “바람을 견디도록 설계된 건물이 자동으로 지진에도 안전한 구조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초고층 빌딩의 경우 지진보다 풍하중에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계 과정에서 풍하중을 견디도록 내구성 높은 코어월, 거대한 기둥, 강철 보강재 등이 먼저 적용되고, 진동 제어 장치가 추가되는 식으로 다층적인 안전 체계가 갖춰집니다.
내진설계와 제진장치는 다르다
건물의 안전성을 이야기할 때 내진설계(earthquake-resistant design)와 제진장치(vibration damping device)를 혼동하기 쉽습니다. 둘은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내진설계는 건물 자체를 더 강하고 유연하게 만드는 설계입니다. 예를 들어 높은 강도의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건물 중심에 거대한 코어벽을 두며, 기둥과 보를 더 촘촘하게 배치하는 식입니다. 이 방식은 건물 전체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지만, 진동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제진장치는 진동이 발생한 후 그것을 직접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TMD나 동조액체댐퍼(TLD)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건물의 진동에 반응하여 작동하는 일종의 “진동 흡수 장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의 초고층 건물들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적용하여 다층적인 안전 체계를 구축합니다.
다음에 초고층 건물 앞에서 확인해볼 포인트
높은 건물 앞에 가면 주변과 다른 특징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물의 평면 형태입니다. 정사각형이나 원형이 아닌 매우 특이한 모양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풍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설계입니다. 롯데월드타워도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단면이 변하도록 설계되어 바람의 영향을 줄였습니다.
또한 건물의 기둥 간격도 관찰해볼 만합니다. 초고층 건물은 기둥의 간격이 일반 건물보다 훨씬 넓습니다. 이는 높은 기술과 강한 재료를 사용해 넓은 스팬을 구현하면서도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설계입니다. 그리고 건물의 외부 표면을 자세히 보면 가끔 특이한 모양의 루버(수평 차양)나 추가 구조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들도 대부분 풍하중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특히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높은 건물을 관찰하면, 그 건물이 얼마나 미세하게 움직이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건물의 최상층 부분이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이 TMD와 건물의 구조가 함께 작동하며 진동을 제어하는 모습입니다. 결코 위험한 신호가 아니라, 엄밀한 계산과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진 정상 작동의 증거입니다.
그 경험 이후로 초고층에서 일하거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솔직히 줄었습니다. 흔들림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난 지금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