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0년 파리 근처 생드니 수도원. 수도원장 슈제는 동쪽 제단을 허물고 새로운 것으로 재건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두터운 벽과 좁은 창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이 아닌 무언가 완전히 다른 형태였습니다. 1144년 6월 11일 헌당식 때 사람들이 본 것은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벽, 그리고 벽이 거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넓은 스테인드글라스 창이었습니다. 실내는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이 고딕 건축의 첫 장면이었습니다.
고딕 성당이 높은 이유는 종교와 기술이 만난 결과입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형태 자체가 신의 광명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이었고, 기술적으로는 벽의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세 가지 혁신이 그 높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빛의 신학이 가진 높이
슈제가 생드니 성당을 재건할 때 추구한 것은 물리적 높이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학 사상인 ‘빛의 신학(Theology of Light)’에서 빛은 신의 현존과 거룩함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를 건축으로 구현하려면 벽을 투명하게, 천장을 높게, 내부 전체를 빛으로 채워야 했습니다. 기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로마네스크는 지붕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벽을 두껍게 지어야 했고, 따라서 창을 작게 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슈제는 새로운 건축 기술을 도입해 이 모순을 풀었습니다.
뾰족한 아치가 방향을 바꾸다
첫 번째 혁신은 첨두아치(pointed arch)입니다. 이전의 로마네스크는 반원형 아치를 사용했는데, 첨두아치는 뾰족한 형태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게의 방향 때문입니다. 반원형 아치는 무게가 옆으로 퍼지는 측면 압력이 크지만, 첨두아치는 그 측면 압력을 줄이면서 무게를 더 수직에 가깝게 내려보냅니다. 다시 말해 축으로 가해지는 힘(축력) 성분이 증가합니다. 이 차이 덕분에 같은 강도의 재료로도 더 높은 구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첨두아치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 효율의 선택이었습니다.
뼈대가 무게를 나눈다
두 번째는 리브볼트(ribbed vault), 즉 갈비뼈 모양의 천장입니다. 기존 로마네스크의 통 모양 천장(barrel vault)은 넓은 면 전체가 무게를 견뎌야 해서 매우 두꺼워야 했습니다. 리브볼트는 십자형의 뼈대(리브)가 무게를 네 개의 기둥으로 직접 보내는 구조입니다. 나머지 천장 면은 얇은 판넬로만 채워집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넓이를 덮으면서도 무게는 극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이 고딕 성당의 높은 천장을 가능하게 한 가장 핵심적인 혁신입니다.
하지만 리브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천장의 무게를 네 기둥에 집중시키면, 그 무게가 벽을 옆으로 밀어냅니다(측면 압력). 벽이 그 압력을 견디려면 여전히 두꺼워야 합니다. 이를 해결한 것이 세 번째 혁신입니다.
날개 버트레스가 벽을 가볍게 한다
플라잉버트레스(flying buttress)는 건물 외부에 설치된 반(半) 아치형의 구조물입니다. 리브에서 발생하는 측면 압력을 벽 바깥쪽에서 받아내 지면으로 전달합니다. 이 덕분에 벽은 더 이상 두터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벽이 얇아지면 큰 창을 낼 수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거대한 창들은 플라잉버트레스가 가능하게 한 결과입니다.
높이는 구조이지 장식이 아니다
고딕 성당의 높이는 이렇게 세 가지 기술의 논리적 결과입니다. 첨두아치가 무게의 방향을 효율화하고, 리브볼트가 무게를 네 지점에 집중시키고, 플라잉버트레스가 그 집중된 무게를 벽 바깥에서 받아냅니다. 각 혁신이 없으면 다음 단계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2세기 생드니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샤르트르(중앙 신랑 높이 36.5m), 랭스, 아미앵 같은 13세기 대성당들을 거치면서 완성되었고, 최종적으로 100m를 넘는 높이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높이가 슈제의 신학 사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는 점입니다. 더 높을수록 더 많은 창을 낼 수 있었고, 더 많은 빛이 내부를 채웠습니다. 신의 광명을 추구한 신학과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기술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고딕
명동성당은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성당입니다. 1892년부터 1898년까지 6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1977년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설계를 맡은 프랑스 신부 코스트는 유럽의 고딕 건축 기법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다만 한국의 벽돌 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유럽의 석조 고딕과는 다른, 한국식 연와조(벽돌) 고딕입니다.
명동성당의 규모는 본당 높이 23m, 탑의 최고 높이 46.7m입니다. 유럽의 거대한 성당들에 비하면 작지만, 고딕 건축의 기본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성당의 신랑은 높은 천장으로 개방감을 주고, 벽면에는 큰 창문이 나 있습니다. 완공 당시 사람들은 이 성당을 보고 “뾰족집(pointed house)”이라 부르며 놀랐습니다. 당시 서울의 대부분의 건물이 낮고 넓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명동성당에 가면 외부의 버트레스를 먼저 관찰해보기 바랍니다. 벽을 지탱하기 위해 벽 밖에 덧붙인 반 아치형 구조물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리브의 무게를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 위로 눈을 들어 천장을 보면 얇은 갈비뼈 모양의 구조가 보입니다. 그것이 무게를 네 개의 기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신학적 열망과 구조적 필연성이 만난 순간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고딕 건축
- 위키백과 생드니 대성당
- 위키백과 샤르트르 대성당
- 서울시 공식 채널 명동성당 아티클
- CPBC 가톨릭뉴스 생드니 대성당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