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베란다는 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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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어서면, 거실 옆 유리창 너머 베란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탁기 옆에 몇 평의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30년 전 아파트에선 이 공간이 얼마나 좁고 비좁았는지, 요즘 입주자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이 공간이 있었을까. 실은 단순한 장식이나 여유 공간이 아니었다.

용어부터 구분해야 할 것들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부르는 “베란다”와 건축법이 말하는 “발코니”는 다르다. 건축법상 발코니는 “건축물의 내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으로, 전망이나 휴식 목적으로 외벽에 부가적으로 설치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베란다는 무엇인가. 베란다는 발코니와 달리 일반적으로 천정이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 차이가 중요한데, 베란다에 천정을 추가해 실내공간으로 확장하면 불법건축물이 되기 때문이다. 테라스는 또 다르다. 거실이나 주방에서 직접 나갈 수 있는 지붕 없는 공간으로, 일반적으로 바닥높이가 실내보다 낮게 설계된다. 한국 아파트의 베란다는 정식 명칭으로는 발코니인데, 일상에서는 베란다라 부르는 이 애매한 상황이 역사와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발코니 외벽 밖으로 돌출 위층 바닥이 지붕 역할 아파트의 그 공간 베란다 지붕 없음 아래층이 더 넓어서 생긴 아래층 지붕 위의 공간 단독주택 2층에 흔함 테라스 지면 연결 건물 밖 지상에 붙은 바닥보다 약간 높은 마당 1층·카페 앞 공간 셋 다 “베란다”로 불리지만 구조가 다르다. 건축법이 정의하는 것은 발코니다.

방풍과 완충이라는 원래 역할

1990년대 한국의 건설사들이 아파트에 발코니를 설계한 이유는 단순했다. 겨울 찬바람을 막는 완충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거실과 외벽 사이에 한 겹의 공간을 두면, 난방 효율이 올라갔다. 동시에 발코니는 서비스 공간으로도 기능했다. 세탁기를 놓고, 빨래를 말리고, 신문지나 계절용품을 쌓아두는 공간. 비싼 실내 면적을 쓰지 않으면서도 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화재가 났을 때 대피하는 공간이었다. 현관 쪽 피난로가 막혔을 때, 발코니를 통해 옆집으로 피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제한된 크기의 창문과 문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입주자들이 발코니를 허가 없이 확장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끼우고, 벽을 세워서 실내공간으로 만드는 불법 공사가 일상화되었다. 건설사들도 이를 알고 있었고, 정부도 단속하지 못했다. 거실 확대라는 실질적 수요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 초반 많은 아파트에서 발코니가 거실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화재 위험은 커지고 있었다. 확장된 발코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피공간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2005년의 전환점, 안전 조건부 합법화

정부는 2005년 12월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코니 확장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대신 화재 안전을 보장하는 대피공간 설치를 의무화했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 옆집과의 경계 발코니에 3제곱미터 이상의 대피공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기존 아파트는 더 까다로웠다. 가구별로 2제곱미터 이상의 대피공간과 함께 90센티미터 높이의 방화판 또는 방화유리, 이동식 자동화재 탐지기까지 설치해야 했다. 바닥도 불연성 재료만 사용할 수 있었다. 스프링클러도 발코니 영역까지 닿아야 했다.

이것은 불법을 눈감아 준 조치가 아니었다. 위험을 받아들인 대신 그 위험을 관리하겠다는 선택이었다. 대피공간이란 화재 상황에서 현관 피난로가 막혔을 때만 사용되는 공간이다. 안쪽에서만 열 수 있는 방화문을 통해 옆집으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밖으로는 반드시 외부 공기와 연결되어야 했다. 이 규정은 이후 신축 아파트 설계의 기준이 되었다. 현재 2010년대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들을 보면, 하향식 대피구(바닥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구조)가 설치되어 있어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한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것이 화재 안전 규정이 실제로 구현되는 방식이다.

이제는 아파트마다 다르다

요즘 신축 아파트의 메뉴를 보면, 발코니의 위치와 크기가 선택사항이 되어 있다. 어떤 아파트는 전체 세대에 하향식 대피구를 설치해서 발코니 확장이 애초에 불가능하게 설계한다. 어떤 아파트는 일부 세대만 대피공간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확장하도록 한다. 발코니 없는 아파트도 등장했다. 처음부터 완충공간이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결과다. 단열 기술이 발전했고, 난방 비용이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분양가를 낮출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2005년 발코니 확장을 조건부로 허가할 때만 해도 이런 다양성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대피공간 신고를 위해 각 지자체 시·군·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구 건축법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에서 발코니를 확장하려면 건축사나 구조기술사의 안전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 복잡한 절차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입주자들은 불법으로 발코니를 개조하고 있다. 합법화된 발코니 확장도 결국 “조건부 허용”일 뿐, 완전한 자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에 실제 아파트에서 관찰할 점

다음번에 아파트를 방문할 때, 발코니를 자세히 보자. 그곳에 방화문이 있는지, 옆집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지 확인해 보면 그 아파트가 언제 지어졌고 어떤 규정을 따랐는지 읽을 수 있다. 하향식 대피구가 있다면 그곳은 애초에 확장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공간이다. 그냥 빈 베란다라면, 그 건물주의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다. 강남역을 나와 주변 아파트들을 둘러보면, 수십 년의 안전 정책과 입주자들의 욕망이 만드는 다양한 풍경이 보인다. 작은 방풍공간에서 시작된 발코니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 변화의 흔적들이 외벽에 새겨져 있다.


참고 자료

최종 검토일: 2026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