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층은 왜 기둥만 있고 비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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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옛 아파트와 요즘 아파트

1980년대와 90년대 아파트를 다시 보면 1층에 실제 거주 세대가 있었다. 지하 몇 층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주민들이 사는 집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신축 아파트를 가면 1층은 기둥들만 늘어서 있고 텅 비어 있다. 기둥 사이로 자동차들이 드나든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1층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필로티(piloti)” 구조는 근대건축의 철학에서 비롯했지만, 한국에서 대중화된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근대건축의 원칙이 된 필로티

필로티는 1920년대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제시한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첫 번째다. 건물을 기둥으로 들어올려 지표면을 완전히 비우는 개념이다. 건축법상으로는 “지상층에 기둥, 내력벽 등만 남기고 외벽이나 설비를 설치하지 않은 개방 구조”로 정의된다.

르코르뷔지에의 의도는 도시성이었다. 도시의 한정된 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지표면은 모두에게 개방하는 것. 거주와 업무는 위층에, 지표면은 공중의 통행로로 삼는다는 뜻이다. 근대도시건축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필로티는 다른 이유로 확산됐다.

한국에서 필로티가 늘어난 이유: 건설비와 법령

한국 아파트에 필로티가 급증한 시점은 2002년이다. 그 해 정부가 주차공간 확보를 의무화했다. 도시가 커지고 자동차가 늘어나자 모든 건물에 주차 공간을 확보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여기서 개발업자들이 눈 여겨본 점은 경제성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파려면 막대한 굴착비가 든다. 지반도 약해질 수 있다. 그런데 1층을 주차장으로 설계하면 어떨까. 기둥만 촘촘히 세우고 나머지는 비워두면 된다.

더 중요한 건 건축법의 이점이다. 필로티는 바닥면적 산정에서 제외된다. 1층을 넓게 남겨도 연면적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용도지역의 높이 제한이나 건폐율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건축법 시행령 제119조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경우 필로티 용도와 관계없이 바닥면적에서 제외된다.

더해서 한국 특유의 ‘1층 기피’ 심리도 작용했다. 1층은 습도가 높고 외부 소음이 크며 프라이버시가 떨어진다. 신축 아파트들이 입주자 선호도를 반영해 1층 세대 판매를 꺼리면서 필로티는 자연스러운 선택이 됐다.

필로티 구조 비교: 지진 시 응력 분포 벽식 구조 (1980~90년대 아파트) 지하 주차장 세대 세대 세대 2층~20층 거주 세대 균등 분산 필로티 구조 (현대 신축 아파트) 지반 주차 2층~상층 거주 세대 2층 응력 집중 (2017 포항지진) 지진(횡방향 진동) 시 응력 흐름 벽체 전체에서 응력 분산 기둥·보에만 응력 집중 (취약)

아파트 필로티와 다세대·빌라 필로티는 다르다

필로티라는 용어로 묶이지만 건설 방식은 건물 유형에 따라 다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필로티는 보통 “기둥 연결형”이다. 지하부터 필로티층까지 수직으로 연결된 기둥이 상층의 벽식 구조를 받쳐 올린다.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다.

반면 다세대주택이나 오피스텔의 필로티는 “기둥 분리형”이다. 위층의 벽체가 1층 기둥과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지진 같은 횡방향 진동이 발생할 때 1층 기둥과 보에 응력이 집중된다. 더 취약한 구조다.

2017년 포항지진이 이를 드러냈다.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지진은 포항 지열발전소의 심부지열발전(EGS) 기술이 촉발한 지진으로, 정부 조사단이 2019년 공식 확인했다. 이 지진에서는 특히 필로티형 건물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다세대·빌라 필로티 건물들의 기둥 손상이 두드러졌다. 이 건물들은 내진설계 의무화 이전에 지어져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으며, 1층 기둥과 보에 응력 집중 문제가 드러났다.

포항지진 직후 건축법이 개정됐다. 2018년부터 2층 이상의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했으며, 2018년 12월 4일부터는 3층 이상 필로티형식 건축물에 대해 설계 및 감리 기준을 강화했다. 설계 단계에서는 건축구조기술사, 감리 단계에서는 고급기술자의 협력을 받도록 의무화했고, 필로티 기둥과 보의 철근배치 완료 시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을 의무화해 시공 품질을 강화했다.

필로티 1층의 실제 거주 환경

건축 철학과 법령을 떠나 필로티 2층에 사는 입주자들의 경험은 현실적이다.

채광이 부족하다. 필로티층 위 2층은 외부 채광면이 한쪽만 가능하거나 제한적이다. 특히 북향이면 더 심하다.

겨울철 결로와 곰팡이가 발생한다. 필로티의 단열이 미흡할 때 특히 심각하다. 주차장 천장 위가 거주 공간의 바닥이 되는 구조에서 온습도 차이로 물이 맺힌다. 별도의 단열 공사가 필요할 정도다.

배관 소음도 문제다. 필로티 바로 윗 세대의 수도관 진동음이 전달된다. 외부에 노출된 바닥 구조라 음향 차단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여름철 차량 통행음도 마찬가지다.

마무리: 현재와 연결

요즘 아파트의 필로티는 1980년대 아파트의 지하주차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선택이다. 지하는 구조체가 땅속에 있어 지반 침하 위험이 있다. 필로티는 지상의 기둥이 무게를 견딘다. 건설비도 적게 든다.

건축법은 2017년 포항지진 이후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했다. 신축 건물들은 이 기준으로 설계된다. 그럼에도 필로티 구조는 계속 사용 중이다. 설계와 시공만 더 엄격해졌을 뿐이다.

다음에 신축 아파트 앞에 서면 필로티의 기둥들을 자세히 봐두자. 콘크리트가 얼마나 두꺼운지, 철근이 촘촘한지. 그리고 2층 베란다의 결로 흔적, 창문 아래의 검은 반점들을 관찰하면 필로티층과 거주층이 얼마나 다른 환경인지 알 수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