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시골의 한옥에서 살았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오래 살던 고향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최신식 2층집을 지었다. 새집은 편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한옥에서 온돌과 마루가 왜 한집 안에 함께 있었는지가 새삼 궁금해졌다.
여름 대청마루에 앉으면 마루 사이사이로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겨울 온돌 방에 누우면 바닥이 훈훈하게 데워진다. 같은 한옥인데 한 공간은 열을 피하고, 다른 공간은 열을 모은다. 이 역설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온돌과 마루는 한반도의 대륙성 기후(겨울 극저온, 여름 고습)에 대응하기 위해 정반대 원리로 설계된 두 시스템이다. 온돌은 겨울 추위를 이기기 위해 바닥에서 열을 내뿜고, 마루는 여름 습기를 피하기 위해 공기를 통하게 한다. 이 상반된 두 체계를 한 집 안에 나란히 둔 것이 한옥의 특징이고, 많은 한옥에서 방과 마루의 바닥 높이는 서로 비슷하게 맞춰져 있다.
겨울을 견디는 온돌의 과학
온돌은 한국 고유의 바닥난방 시스템이다.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면, 열을 머금은 뜨거운 연기가 방바닥 아래 고래라는 좁은 통로를 지나간다. 구들장(방 바닥)과 그 아래 고래가 점차 데워지면서, 바닥이 복사열을 내뿜는다. 이 열이 위로 올라오는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난방이 온돌이다.
온돌이 대류(공기를 데워서 순환), 전도(물질을 통한 열 전달), 복사(복사파 방출)라는 세 가지 열 전달 방식을 모두 사용한다는 점이 과학적이다. 반면 라디에이터식 난방은 주로 공기를 데우는 대류 중심이다. 국가유산청은 온돌의 이런 특성을 “두한족열”, 곧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하는 난방으로 소개한다.
온돌의 구조는 단순해 보이지만 정교하다. 아궁이에서 시작한 불길이 먼저 ‘부넘기’라는 턱을 넘어간다. 그 뒤 줄고래(불길이 있는 골짜기)를 따라가다가 허튼고래(불길 없는 골짜기)로 방향을 바꿔 연기를 퍼뜨린다. 마지막에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열이 구들장으로 최대한 전달되고, 불에서 타다 남은 매연은 걸러진다.
여름을 살아가는 마루의 설계
마루는 온돌과 정반대로 작동한다. 지면에서 위로 띄워 올린 목재 바닥이 마루다. 마루는 기둥과 연결된 장귀틀 위에 놓이며, 내부에 동귀틀로 인방부재를 가로세로 짜맞춘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 아래가 완전히 뚫려 있다는 점이다.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마루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한반도 여름을 생각해야 한다.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몰려오는 계절, 습도가 극도로 높아진다. 지면에 닿은 흙바닥은 습기를 머금고 곰팡이가 피고 부패한다. 하지만 지면에서 떨어진 마루 아래로 바람이 통하면 습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이것이 마루의 본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마루는 크기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가장 넓은 대청마루는 여름철에는 식사와 취침 공간이 된다. 다듬이질이나 바느질 같은 가사노동도 마루에서 한다. 높은 기단 위의 누마루는 권위를 표현하는 동시에 통풍을 극대화한다. 방 앞의 좁고 긴 쪽마루는 외부와의 완충 공간이면서 계단 역할을 한다. 재료도 다르다. 장마루는 길고 넓은 널을 쓰고, 쪽마루는 약 60cm 정도의 작은 널 여러 개를 이었다.
정반대가 함께하는 방법
온돌과 마루가 한 건물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높이 조정이다. 온돌 방의 바닥을 높게 설치하고, 마루도 지면에서 일정 높이로 띄우면, 두 공간의 바닥 높이를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마루에서 온돌 방으로, 또는 그 반대로 넘나들 때 단차가 거의 없어 생활이 편하다.
이 설계는 남방 문화와 북방 문화가 만난 결과다. 남쪽 지방에서는 습기를 피하기 위해 바닥을 높게 띄우는 개방 구조를 발달시켰다. 북쪽 지방에서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바닥난방을 고도화했다. 한반도의 한옥은 이 두 전략을 모두 채택했다. 겨울이 극혹하고 여름이 고습한 대륙성 기후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지역에 따라 강조점이 달랐다. 추운 북부 지방의 한옥은 겹집(방을 두 줄로 배치)으로 온돌을 극대화했다. 더운 남부 지방의 한옥은 홑집(방을 한 줄로 배치)으로 마루와 통풍을 극대화했다. 지역마다 비중은 달랐지만, 온돌과 마루의 결합은 전통 한옥의 대표적 특징으로 꼽힌다.
한국식 난방의 현대적 계승
온돌은 근대에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건축으로 진화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937년 허버트 제이콥스 주택을 설계하면서 온수 파이프를 바닥에 매입하는 복사난방을 채택했고, 이는 미국 근대 주택에 바닥 복사난방이 퍼지는 초기 사례가 됐다. 물론 바닥을 데우는 난방 자체는 온돌과 로마의 하이포카우스트처럼 훨씬 오래된 기술이다. 가정집에 온수 순환난방을 도입한 것은 온돌의 원리를 현대 기술로 재해석한 사례다.
한국의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초반 마포아파트에는 연탄 보일러에서 데운 온수를 각 방에 공급하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후 온수 순환 바닥난방이 광범위하게 도입되면서, 오늘날 거의 모든 아파트가 온돌 방식의 바닥난방을 쓰고 있다. 현대인들은 그것을 여전히 “온돌”이라 부르며, 온수 순환과 전기 발열을 이용해 구들장 대신 파이프나 히팅선으로 난방한다.
국가유산청이 2018년 온돌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유도 이것이다. 온돌은 옛날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기술 유산이다. 매일 아침 따뜻한 바닥에 발을 딛는 수백만 명의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온돌의 후손들이다.
다음에 한옥에 가면
한옥을 방문할 때 마루와 온돌 방의 바닥 높이를 비교해 보자. 표면상 다르게 보이는 두 공간이 실제로는 거의 같은 높이에 있을 것이다. 여름에 가면 대청마루가 얼마나 시원한지 몸으로 느낀다. 겨울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온돌의 따뜻함을 확인해 보면 된다. 스크린 없이 정확한 높이 계산만으로 세 가지 열 전달 방식을 모두 제어하는 무명의 목수들이 몇백 년 전에 만든 그 편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따뜻한 방바닥과 마루의 서늘한 감각은 아직 기억난다.
참고 자료
- 국가유산청, 독창성과 과학성을 갖춘 한옥의 심장, 온돌 (cha.go.kr)
- 국가유산청, 한옥의 바닥 ‘마루’, 집에 활력을 들이는 공간 (cha.go.kr)
- 국가유산청, 한옥의 중심공간, 마루 (cha.go.kr)
- 서울한옥포털, 한옥의 구조 (hanok.seoul.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처마·부연·마루 (encykorea.aks.ac.kr)
내부링크
- 한옥 처마는 왜 길까 (같은 카테고리, 한옥의 다른 설계 원리)
검토 기준일: 202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