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출퇴근길에 지하철을 타다 보니 승강장의 기둥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굵고, 많다. 왜 이렇게까지 굵고 많아야 하는지, 어느 날부터 자꾸 따져보게 됐다.
명동역이나 종로3가역의 승강장에 내려서면 눈에 띄는 게 있다. 기둥이 유난히 많다. 기둥들 사이로 사람들이 흘러다닌다. 천장은 높지만 시야는 나뉜다. 이 기둥들은 도시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구조이자 당시 기술의 결과다.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서 지표면의 도로와 건물 하중을 받는 기둥은 굵을 수밖에,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개착식 공법이 남긴 구조적 필연성
서울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개통했다. 당시 건설 방식은 개착식이었다. 땅을 크게 파낸 뒤 콘크리트 박스를 만들고 다시 흙으로 덮는 공법이었다. 비용이 저렴하고 기술 난이도가 낮다는 게 장점이었지만, 지상 도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지상 교통을 계속 흘려보내면서 지하를 파려니 기둥이 자주 들어가야 했고, 짧은 간격의 기둥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호선에서 2호선(1980-1984년 개통)으로 이어지는 초기 지하철 구간에서는 이 패턴이 반복됐다. 개착식 공법 구간의 기둥 배치는 지상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지하 공간을 지탱하는 최소 단위를 계산한 결과였다. 짧은 간격의 기둥이 여러 개 있으면 각 기둥이 받는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착식 공법에서는 기둥을 촘촘히 배치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오래된 역사일수록 기둥이 많다.
도로와 건물이 기둥을 굵게 만든다
지하철 기둥이 굵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위를 봐야 한다. 역사 위에는 도로가 있고, 그 위에는 건물이 있다. 이들이 모두 기둥에 무게를 건넨다. 명동역 위에는 명동거리가 있고, 종로3가역 위에는 교차로가 있다. 매일 쏟아지는 자동차, 사람들의 무게가 지하 기둥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설계기준에서는 역사의 기둥 설계 시 상부 도로와 건물 하중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규정한다. 역마다 다르지만, 때로는 한 개의 기둥이 상당한 하중을 견뎌야 한다. 이런 압력을 받으면 기둥은 자연스럽게 굵어지고 강화된 콘크리트를 써야 한다. 다만 설계 기준에는 승강장 연단부 1.5미터 이내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도록 했다. 이것이 통행자들이 만나는 유일한 배려다.
공법의 진화가 기둥의 간격을 넓혔다
지하철 건설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둥의 형태도 바뀌었다. 개착식 공법 이후 도입된 터널식 공법(NATM·뉴 오스트리안 터널링 메서드)은 지상의 교통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지하를 굴착할 수 있었다. 1기 지하철 일부 구간에서도 이 공법이 활용되었으나, 2기부터 터널공법의 비중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기둥 간격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2010년대 이후 영동대로 다층환승센터 같은 대규모 지하 프로젝트에서는 건설 기술의 진보에 따라 기둥 간격을 더 넓게 설계할 수 있게 됐다. 건설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효율적인 구조가 가능해졌다.
내진 보강이 기둥의 미래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1~4호선은 내진 설계 기준이 부족했다. 50년 전 건설 당시에는 지진 대응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기존 1~4호선에는 이후 지속적으로 내진보강이 이루어져 왔고, 그 과정에서 기둥 구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미래의 지하철 기둥은 하중을 견디는 일을 넘어 지진 같은 예기치 못한 움직임까지 대비해야 한다. 이는 기둥을 더 복잡하게, 더 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혹은 반대로 첨단 기술로 더 가늘고 효율적인 설계를 찾는 방향일 수도 있다.
호선별로 비교해 볼 관찰 포인트
다음에 지하철을 탈 때 기둥을 세어보자. 1호선, 2호선 역사의 기둥 간격과 두께, 그리고 최신 호선(9호선이나 신분당선)의 기둥을 직접 비교해 보면 기술 발전의 궤적이 보인다. 오래된 역사에서는 기둥이 촘촘해서 승강장이 나뉜 느낌이지만, 새 호선은 더 트인 공간감을 선사한다. 기둥의 배치와 굵기는 건설 시기, 공법, 그리고 도시의 하중 변화를 기록한 구조물이다. 역사가 기둥에 묻혀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출근길에 같은 기둥을 지나쳐도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참고 자료
- 서울시 (2020). 지하철 주요설계기준(건축분야)
- 국토교통부. 도시철도 표준규격(도시철도법 제22조)
- 서울교통공사. 1~4호선 내진보강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