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는 왜 창문이 거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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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앞에서 건물을 올려다보면 벽이 이상하게 매끈하다. 1층 유리는 환하게 빛나는데 그 위로는 창이 거의 없어서 몇 층 건물인지 세기도 어렵다. 바로 옆 오피스 빌딩은 창이 격자로 촘촘히 박혀 있는데, 백화점만 다르다. 왜 창을 내지 않았을까.

답부터 말하면, 백화점은 법이 창문을 요구하지 않는 건물이고, 그 자유를 창보다 값나가는 쪽에 썼다. 비워둔 벽은 안쪽에서 상품을 붙이는 면이 되고, 바깥쪽에서는 광고판이 된다. “고객의 시간 감각을 빼앗으려고 창을 없앴다”는 흔한 설명은 결과에 나중에 붙은 해석이다.

법이 창문을 요구하는 건물은 정해져 있다

건축법 시행령 제51조 1항은 채광과 환기를 위한 창문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건물을 나열한다.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의 거실, 학교의 교실, 의료시설의 병실, 숙박시설의 객실이다. 이 네 가지에는 거실 바닥면적의 10분의 1 이상 되는 채광창을 내야 한다.

목록에 판매시설은 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쇼핑몰은 창을 한 장도 내지 않아도 건축 허가에 걸리지 않는다. 아파트 거실에 창이 있는 데는 법의 강제가 섞여 있고, 백화점 벽이 비어 있는 데는 그 강제가 없다.

최초의 실내 쇼핑몰은 오히려 빛을 자랑했다

창 없는 상자의 원형은 1956년 10월 8일 미국 미네소타주 에디나에 문을 연 사우스데일 센터다. 미국 최초의 실내형 쇼핑몰이고, 설계자는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빅터 그루엔이다. 잡지 뉴요커는 2004년 이 건물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우스데일은 내향적이었고, 외벽은 비어 있었으며, 모든 활동은 안쪽에 집중됐다.

여기서 통설이 흔들린다. 외벽을 비운 그루엔은 정작 빛을 없애지 않았다. 미네소타역사학회는 그루엔의 설계를 “거대한 천창이 비추는 정원 광장을 갖춘 마을 광장”으로 기록한다. 그가 세운 설계사무소 그루엔 어소시에이츠도 사우스데일을 “햇빛이 쏟아지고 공공 미술이 놓이고 유럽 거리처럼 카페가 들어선” 공간으로 설명한다. 원본의 설계 원리는 “빛을 차단한다”가 아니라 “빛은 위에서 넣고 시선은 안으로 모은다”였다.

그루엔 자신은 후대의 쇼핑몰을 인정하지 않았다. 1978년 런던 강연에서 개발업자들이 자기 구상을 망쳐놨다며, 그 사생아들의 양육비는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창이 없으면 손님이 시간을 잊고 더 오래 머문다”는 설명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창문의 유무와 체류 시간의 인과를 측정한 공공기관이나 학술 연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백화점 사업자가 그런 의도를 밝힌 공식 문서도 없다. 창이 없어서 시간을 알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벽을 닫은 첫 번째 이유라는 근거는 약하다.

창을 포기하면 벽의 양면이 남는다

창이 없는 벽은 안쪽에서 매대와 행거, 간판을 붙일 수 있는 면이 된다. 창이 하나 있으면 그 폭만큼 진열이 끊긴다.

조명도 걸린다. 백화점 매장은 늘 같은 밝기와 같은 색을 유지해야 하고, 옷과 화장품의 색을 실제 색에 가깝게 보여주는 연색성이 중요하다. 창이 있으면 오전과 오후, 맑은 날과 흐린 날에 같은 옷의 색이 달라진다. 빛에 의한 변색과 퇴색은 실제로 관리되는 문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실 조명을 두고 소장품 보존과 관람 조도 확보 사이의 이중성이 있다고 설명하며, 자외선 피해를 줄인 조명을 쓴다. 다만 백화점이 상품 보존을 이유로 창을 없앤다고 밝힌 기관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바깥쪽 면은 더 직접적으로 돈이 된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2024년 11월 1일 외벽에 면적 1,292.3㎡의 미디어파사드 신세계스퀘어를 공개했다. 건물 벽 한 면이 통째로 화면이다. 창이 격자로 박혀 있었다면 이 면적은 나오지 않는다. 롯데백화점도 본점 영플라자 외관에 가로 77m, 높이 21m 규모의 미디어파사드를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창을 없앤 값은 소방설비로 치른다

창을 없애는 데 대가가 없지는 않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는 무창층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상층 가운데 요건을 갖춘 개구부의 면적 합계가 그 층 바닥면적의 30분의 1 이하인 층이다.

개구부로 인정받는 조건이 까다롭다. 지름 50cm 이상의 원이 통과할 수 있어야 하고, 바닥에서 개구부 밑부분까지 높이가 1.2m 이내여야 하고, 도로나 차량이 들어올 수 있는 빈터를 향해야 하고, 창살 같은 장애물이 없어야 하고, 안이나 밖에서 쉽게 부수거나 열 수 있어야 한다. 다섯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창으로 세어준다.

지름 50cm 원이 통과 바닥 바닥에서 1.2m 1.2m 이내 1.2m 초과 개구부로 인정 개구부로 인정 안 됨 벽 위쪽 띠창은 넓어도 제외 인정되는 개구부 면적의 합계가 그 층 바닥면적의 30분의 1 이하면 무창층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

높이 조건이 특히 중요하다. 벽 위쪽에 띠처럼 길게 낸 창은 아무리 넓어도 개구부에서 빠진다. 화재가 났을 때 사람이 그 창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창이 보이는 층도 소방법상 무창층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하층이나 무창층에 있는 판매시설은 일정 규모를 넘으면 연기를 빼내는 제연설비를 갖춰야 한다. 벽을 닫아 얻은 진열 면적은 소방설비 비용으로 되돌려 낸다.

창문을 되돌린 백화점

2021년 2월 26일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 서울은 이 관행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천장을 전부 유리로 만들고, 천장부터 1층까지 건물 가운데를 뚫어 위에서 들어온 빛이 아래층까지 내려가게 했다. 1층에는 높이 12m의 인공 폭포를 740㎡(224평) 규모로 두고, 5층에는 천연 잔디를 깐 3,300㎡(약 1,000평) 실내 정원을 만들었다.

대가는 매장 면적이다. 영업면적 8만 9,100㎡ 가운데 매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뿐이고, 나머지 49%는 실내 조경과 휴식 공간이다. 그런데 이 점포는 개점 33개월 만에 연매출 1조 원을 넘겼다. 국내 백화점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이다. 창을 닫아야 물건이 팔린다는 통념이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햇빛을 어떻게 다룰지는 건물의 성격을 결정한다. 한옥은 처마 깊이로 여름 볕과 겨울 볕을 갈라냈고, 백화점은 오랫동안 벽을 닫는 쪽을 택했다.

다음에 백화점에 가면

1층 유리와 그 위층 벽을 나란히 비교해 보라. 1층 유리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라고 만든 창이 아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게 만든 진열면이다. 같은 유리인데 방향이 반대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면서 벽에 붙은 유리를 찾았다면 아래쪽 끝 높이를 보라. 무릎 근처라면 소방법이 창으로 세어주는 개구부이고, 어깨보다 높다면 세어주지 않는다. 창처럼 보이는 것과 법이 창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참고 자료

  • 국가법령정보센터, 건축법 시행령 제51조(거실의 채광 등) (law.go.kr)
  • 국가법령정보센터,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 및 별표 4 (law.go.kr)
  • 미네소타역사학회 MNopedia, Southdale Center (mnhs.org)
  • Gruen Associates, Southdale Center 프로젝트 소개 (gruenassociates.com)
  • Malcolm Gladwell, The Terrazzo Jungle, The New Yorker (2004-03-15)
  •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 박물관 환경 (museum.go.kr)
  • 신세계그룹 뉴스룸, 초대형 미디어파사드 신세계스퀘어 (2024-11)
  • 서울경제, 더현대 서울 개점 보도 / 전자신문, 더현대 서울 연매출 1조 달성 (2023-12-03)

검토 기준일: 2026-08-12. 제연설비 대상의 바닥면적 기준은 법령 원문으로 확정하지 못해 수치를 적지 않았다.